UCLA 뇌과학자 킬리 머스카텔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른 16명의 대학생들을 뇌스캔 기계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래 대학생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를 친구도 좋아하는 것 같다. 새 학기가 시작돼서 설레기도 하고 떨린다."라는 문구를 읽게 했다. 한 마디로 타인의 감정에 얼마나 이입하는지 측정했다. 뇌 이미지 촬영 결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낼 때 활성화되는 네트워크의 활성도가 하락했다.
암 병동 환아들의 가슴 아픈 사진들을 보여주고 뇌를 찍어 봤더니 자산 보유액이 적은 사람들일수록 뇌의 공감 영역이 더 활성화된 반면 부유할수록 덜 활성화되었다. 충격적인 건 이런 공감력 부족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4세 아동부터 감지되었다는 점이다.
두피에 전극을 붙이는 기술을 통해 실험한 결과 권력자들은 자신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가 심지어 자신의 공감능력이 남들 못지 않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의 뇌는 방추이랑이라는 곳을 통해 타인의 얼굴에서 정보를 추출한다. 방추이랑에 문제가 생기면 남들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내지 못하거나 안면인식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RME검사에서는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추측해보라고 한다. 단, 눈만 보여준다.
콜럼비아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 아담 갈린스키
A그룹에게 "살아오면서 당신이 가장 힘 있고 권력을 가졌던 때를 돌이켜 보세요."
B그룹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세요."
그리고 RME 검사와 비슷한 사회적 감수성 검사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얼마나 잘 알아채는지 측정한다. 그 결과 권력을 잡았던 때를 회상한 사람들은 어제 뭘 했는지 생각한 사람들보다 무려 46% 더 남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 실패했다.
워싱턴대 의대 교수 존 메디나
부하 직원들의 감정이 팀장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권력을 갖게 된 사람들은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도대체 왜 상사들의 뇌에 이런 일들이 생길까?
진화심리학의 설명
뇌는 죄책감이나 외로움, 여러 감정들을 만들어서 우리를 더 사회적이게 하고 남들에게 관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권력이 나의 생존을 보장해 주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없는데 뇌도 굳이 에너지를 쓰려 하지 않게 된다. 대신 사회적 감수성이 사라진 그 자리를 특권 의식이 채운다. 그리고 특권 의식은 성적인 영역까지 침범한다.
플로리다대학의 조나단 쿤스먼
남녀 대학생 50명을 모아서 남녀 2인 1조로 조별과제를 하게 될 거라 말해준다. 하지만 그 전에 조장을 뽑아야 한다면서 리더십을 측정하는 검사를 시킨다. 그리고는 실제 결과와는 아무 상관없이 한 그룹에게는 검사 결과 리더십이 뛰어나다며 조장으로 임명하고 다른 그룹은 조원을 맡긴다. 조장은 팀의 모든 의사결정권과 마지막 실험 후 받게 될 보상을 분배하는 권한까지 누린다. 쿤스먼은 다른 팀원을 실제로 만나기 전에 2분짜리 자기소개 영상을 찍게 한다. 그리고 팀원이 찍은 자기소개 영상을 보여준다. 만약 조장으로 선정된 사람이 남자라면 여자 팀원의 자기소개 영상을 보게 되고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쿤스먼은 참가자들에게 다음 두 가지를 묻는다.
1. 영상 속 팀원이 당신에게 성적인 감정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나?
2. 영상 속 팀원이 당신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나?
조장을 맡은 사람은 조원을 맡은 사람들보다 성적인 측면에서 더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호감을 묻는 질문에서는 두 그룹 간에 차이가 없었다.
남들이 판단하는 것보다 자신의 성적 매력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성적 과지각이라 부른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성적 과지각 경향이 높게 나왔지만 여성들도 조장을 맡게 되면 성적 과지각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팀장님들의 타락해버린 뇌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과연 권력이라는 칼자루를 쥐고도 냉혈한 나르시시스트로 타락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팀장님의 뇌를 되돌릴 방법은 없는 걸까?
그 답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키고 민주적인 시스템을 구축한다"가 되겠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영국 연구진은 나르시시즘 점수가 높은 사람들에게 가정 폭력 생존자가 겪은 일, 연인과의 괴로운 이별 등 슬픈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러고는 "이번 주에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셨나요?" 라는 질문을 한다. 그 때 사람들의 신체 반응을 측정했다.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슬픈 이야기 듣고난 후 자율신경계의 활동성이 증가하고 공감 반응이 관찰된다. 하지만 나르시시즘 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슬프고 참혹한 이야기를 들어도 무감각했고 별다른 생리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이렇게 질문을 바꾸자 사람들의 공감 점수는 급증했다. 물론 말 한마디라도 덜 섞고 싶은 팀장님한테 "팀장님이라면 어떠셨을 것 같으세요?"라고 묻는 건 비현실적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를 직접 변화시키기보다는 조직의 힘을 빌리는 게 좋을 것 같다.
하버드대 데이비드 키드, 임마누엘 카스타노 교수
남의 생각이라곤 눈꼽만큼도 못 하는 사람들을 독서모임에 가입시키라고 권한다. 문학상을 수상한 좋은 작품들을 읽히고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의견을 나누게 했다. 그 결과 단 몇시간짜리 실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감수성 점수가 상승했다.
옥시토신
자기가 제일 잘났고 남을 믿지 않는 팀장님의 태도를 단번에 바꿀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바로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유도한다.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코에 뿌리면 타인을 신뢰할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옥시토신은 호감가는 상대와 잘 되어갈 때, 사랑하는 사람과 스킨십을 할 때 분비돼서 사랑의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맞는 짝을 찾아드리기 쉽진 않겠지만 팀장님과 잘 어울릴만한 운명의 그 분을 소개시켜주는 것도 스프레이를 잇는 차선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옥시토신 농도가 너무 높아지면 자신의 연인과 가족 외에 다른 집단에는 공격성과 배타성을 보이게 되기 때문에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
추천도서: 존 메디나 교수의 <직장으로 간 뇌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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