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실사처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등)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현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보다 보면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저 비가 내리는 길바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내리는 비와 물방울, 반사된 주변의 조명까지 너무나 실제처럼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3D 애니메이션만큼 정교한 도시의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비가 오고, 햇살이 내리고, 노을이 지고, 밤이 되고, 다시 새벽이 오는 도시의 다양한 모습들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물끄러미 보여주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판타지나 SF 같은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철저한 현지 로케이션으로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미리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화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너의 이름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2016년 ‘너의 이름은’을 예로 들어 보면 주인공들이 거쳐가는 거의 모든 장소는 실제 도쿄에 있는 장소들이다. 타키와 오쿠데라 선배의 첫 데이트 장소는 도쿄의 국립 신미술관 2층에 있는 카페이다. 시나노마치역 앞에 위치한 육교, 그곳에서 바라보는 도쿄 타워 등 작품 속 거의 모든 장소가 사진을 깔아 놓고 그 위에 그린 것처럼 현실과 1:1 매칭이 되는 수준이다. 현존하지 않는 실내 장소의 경우에도 모든 디테일이 포함된 3D 모델을 미리 만들어 놓고 장면에 맞는 구도와 앵글로 바꿔 가면서 정확한 작화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사실 이 정도면 창작이라기보다는 사진 위에 덧대고 그린 현실 모방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렇게 그려진 장면들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정말 감탄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3D 애니메이션처럼 현실과 똑같아서 나오는 감탄이 아니라 아름다워서 나오는 감탄 말이다.
현실과 다른 현실
하지만 사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화는 자세히 보면 현실과 똑같지 않다.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비가 내리는 장면을 정지해서 보면 사실 빗방울은 없고 하얀 선과 원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떨어지는 비처럼 보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련한 노을과 불빛으로 가득한 육교는 사실 흔해 빠진 동네 육교일 뿐이고 햇살이 가득한 계단도 역시 실제로는 동네 뒷산을 오르는 평범한 장소에 불과하다. 신카이 마코토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 작화 방식은 일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과장하고 혹은 다른 부분들을 지워버리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완전히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일상의 아름다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는 풍경에 감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여러 번 등장한다. 타키와 몸이 바뀌면서 생전 처음 도쿄에 오게 된 미츠하가 그 장대한 도심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우연히 여객선에서 아침을 맞이한 스즈메도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이런 감탄이 반드시 낯선 풍경에 대한 감탄만은 아니다. 언제나 곁에 있지만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우리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 낯선 풍경에서 느끼는 감탄보다 더 크게 와닿게 된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아침햇살,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 햇살 가득한 교실의 복도와 칠판에서 떨어지는 분필 가루의 추억까지. 유성이 떨어지는 엄청난 광경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스쳐가는 수많은 아름다움들이 있다. 그저 지나치면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잠깐 멈춰서서 의미를 부여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행복한 순간들도 있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는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아마도 감독 개인적으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보는 세상
내가 솔직히 좀 놀랐던 장면이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열었을 때 햄버거가 부풀어 오르는 장면이었다. 이건 배달이나 포장이 아닌, 매장에서 금방 만든 햄버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의 눈에는 아무렇지 않은 풍경이지만 이를 보는 우리 관객들은 알고 있다. 이 곳이, 이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무언가를 잊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뭔가 중요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어쩌면 신카이 마코토가 보는 세상이 그런 모습일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소망
우리를 둘러싼 소소한 모든 것, 그 일상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언젠가부터 잊고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 타키는 사라져가는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타키의 소망은 아마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자신의 소망이 아닐까 은데 주인공들보다 오히려 더 눈에 들어오는 풍광들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현실, 이 장면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잊혀진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고 싶은 소망! 공원에서 집까지 가는 과정을 주인공들의 모습도, 대사도 없이 그 주변 풍경만으로 보여준 장면처럼 어쩌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인물도, 이야기도 아닌 이 일상의 아름다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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