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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상 리뷰/의료진 정보

이국종 교수, 당신이 몰랐던 12가지 사실 (ft. 괴인협회)

by W.H. 202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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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 관 속에 가지고 갈 것은 그 동안 치료했던 환자의 명부이다.”

 

이국종-교수
이국종 교수 (이미지 출처: 괴인협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급 의사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던 이국종 교수

 

해적에 의해 죽을뻔 했던 선장을 치료했던 일과 과거 판문점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던 북한 군인을 살려내며 사람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아 대한민국 응급의료 시스템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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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1969, 서울시 강서구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기 보냈던 이국종 교수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지뢰를 밟고 한쪽 눈과 팔다리를 다치셨다. 당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못했던 탓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중학교 시절까지 아버지의 장애를 숨겼다. 집안 사정도 좋지 못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주민센터에서 배급해주던 밀가루로 끼니를 때웠다.

 

의사

중학생 시절, 지병으로 축농증 앓고 있었던 그는 당시 국가 유공자에게 주어지던 의료 복지카드를 이용해 진료 받고자 한참 걸어 큰 병원 찾아간 적 있는데 그 병원에서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여 상처를 받았다. 이후 다른 병원에서 의료복지카드를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정성껏 진료해줬다. 이국종 교수가 이 카드를 보고도 잘해주시네요라고 하자 의사가 왜 네가 그런 걱정까지 하냐라며 이후로 그가 올 때마다 돈도 받지 않고 오히려 용돈까지 주는 선행을 펼쳐 이국종 교수가 의사에 대한 로망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해군

1988, 의사가 되기 위해 아주대학교 의대에 입학했던 이국종 교수는 의과대학 4학년 마치게 되자 가정형편이 또 다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1992, 해군 일반병으로 입대했는데 당시 해군의 간부들이 그에게 뱃사람 정신을 강조하며 어떤 큰 파도도 헤쳐 나가며 임무를 수행하는 게 뱃사람이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소금기, 기름때에 찌든 군복이 값진 것이다”, “학업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라라며 독려해준 것이 큰 힘이 되어 6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국가유공자) 다시 사회로 돌아왔던 그가 한 번 끝까지 가보고자 의료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한다.

 

해적

그렇게 미국과 영국에서의 유학을 통해 경험 쌓은 뒤 아주대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된 그는 2011, 소말리아 해적의 습격으로 석해균 선장이 6발의 총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바로 오만으로 파견을 나가 선장의 상태를 본 뒤 이 곳에 더 놔두면 사망한다라는 판단이 들어 내 돈이라도 낼 테니 일단 이송부터 하자라며 지체 없이 그를 한국으로 데려와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탈북

2017년에는 판문점에서 탈북 시도했던 북한군이 귀순 하던 중 5군데나 되는 총상을 입으며 굉장히 위독한 상태에 빠진 적이 있는데 이 때 이국종 교수가 자유 대한민국을 찾아왔으니 자유 대한민국이 직접 살려야 될 환자다라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수술을 진행해 결국 그가 이국종 교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증외상 분야는 국내에서 매년 10만 명이라는 환자가 발생해 사망률이 35%에 달하는 치명적인 외상을 다루는 분야지만 일반인들의 관심 부족으로 인해 의료진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와중 이국종 교수가 꾸준히 미디어에 나와 응급의료계에 대한 현실을 알려준 덕분에 전 국민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아 국가에서 전국에 외상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지원하는 법률인 일명 이국종법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기타와 음악 즐겼던 그는 수술을 하던 중 피로감이 느껴지면 린킨파크, 콜드플레이와 같은 해외밴드의 음악을 튼다고 하며 평소 굳어있는 얼굴을 보여주다가도 음악 이야기만 나오면 웃음을 짓고 북한 귀순병이 건강을 회복하고 있을 때는 인디밴드가 부른 락버전 “Gee”를 들려주게 되었지만 이 때 병사가 소녀시대의 오리지널이 더 좋다는 평을 남겼다고 한다.

 

명예진급

2015, 명예 해군대위로 선정됨과 동시에 해군의 홍보대사로서 여러 활동들을 하게 되었던 그는 잠수, 공중 강하, 헬기 레펠과 같은 훈련을 완벽하게 진행했던 덕분에 만능 의사라는 칭찬을 받게 되었고 그동안 의료계에서 쌓아올렸던 많은 업적들을 인정 받아 2018년에 중령으로 진급하게 되었다고 한다.

 

훈장

그의 업적들은 군대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2011년부터 실행되고 있는 정부포상 국민추천제에 따라 2019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국민훈장인 무궁화장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훈장을 수여받았던 두 명의 인물 중 첫 번째 수여자가 이태석 신부였기 때문에 두 사람의 직업이 같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더 많은 존경을 표하기 되었다고 한다.

 

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라는 점 때문에 편한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이국종 교수는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고강도의 업무를 수행하며 피곤에 지친 생활을 이어나갔고 36시간의 근무를 마친 뒤 잠시 쪽잠을 자고나서 다시 36시간의 연속 근무를 하는 등 잦은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끝에 왼쪽 눈은 이미 실명한 상태이고 오른쪽 눈 또한 시력이 점점 나빠져 가고 있으며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으로 인해 사고를 당해 왼쪽 얼굴이 마비되는 등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든 업무를 지속해 왔었다고 한다.

 

욕설

2020, 병원에서 녹음되었던 녹취록이 공개되며 이국종 교수가 평소 병원에서 받고 있던 취급이 공개돼 전 국민이 분노하게 된 적이 있는데 해당 녹취록에 따르면 아주대 의료원장이 계약직에 대한 처우개선 이야기를 꺼냈던 이국종 교수에게 욕설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이 분노했다고 한다.

 

영상 확인: 괴인협회 https://www.youtube.com/watch?v=VdNHEVujI1E 

괴인협회 영상 - 이국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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